Projects
Park Cheonkang Architects

Jelly Fairy



사진: 최진규

TYPE: 인테리어
YEAR: 2015
STATUS: COMPLETED
LOCATION: 마포구 상수동
CLIENT: 개인 클라이언트
DESIGN: 박천강, 조남일, 최진규

가짜 재료

건축재료는 건축의 구조와 표면을 구성한다.

 

비교적 최근까지 건축재료는 늘 ‘진짜’였다. 종류, 색깔과 강도, 크기, 제작법 등의 차이, 혹은 고급과 저급의 구분은 있어도, 재료가 ‘가짜’라는 개념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벽돌은 벽돌이고, 나무는 나무, 돌은 돌이었다. 하지만, 이런 ‘정직한 재료’라는 개념은 지난 세기부터 희석되기 시작해 현재는 실제 재료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미지가 유사한 제품들이 빠른 속도로, 세분화되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이들 건축재료들은 무수한 ‘진짜 vs. 가짜’의 비율을 가진다. 목표는 언제나 명료하다. 진짜의 이미지에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욕망과 동시에 진짜에 수반되는 불편함과 현실의 거칢을 제거하여 매끄럽게 하는 것. 다시 말해, 이미지로써 진짜와 구분이 안되게끔 하는 것과 진짜에 동반되는 재료비와 시공비를 줄이는 것, 그리고 재료를 최대한 얇은 두께로 만들어 공간면적을 최대화하는 것, 무게를 최소화하여 시공성을 용이하게 하는 것, 각 재료가 가진 불쾌한 냄새, 그리고 닿았을 때 피부가 긁힐 정도의 거친 표면을 줄이는 것 등이 이런 흐름의 원인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시장에는 표준벽돌도 생산되지만 얇은 두께를 가진 벽돌 타일, 벽돌의 울퉁불퉁한 텍스처와 이미지를 빼닮은 벽돌 판넬, 벽돌의 이미지를 프린트한 벽지 등 많은 종류의 유사 효과를 내는 제품이 있다. 목재 또한 원목판재, 집성목, 합판, 강마루, 강화마루, 목재의 이미지를 프린트한 벽지 등으로 단계별, 단가별 ‘가짜’의 목록이 있고, 그 리스트는 무한하다.

 

‘가짜 재료’라는 것은 무엇이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가짜는 원본으로써의 진짜를 전제로 한다. 진짜 이외의 모든 것들은 진짜의 불완전한 복제에 불과하다. 하지만, 테크놀로지의 빠른 발전으로 인해 가짜는 점차 진짜와 구별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가짜가 모든 진짜를 뒤덮는 시뮬라시옹의 상황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1] 실제로 현재 우리는 가짜가 너무나 진짜 같아서 그것이 진짜보다 오히려 더 진짜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이 단계까지 오면 무엇이 원본이고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효과’가 ‘진실성’을 압도하게 된다.

 

가짜가 진짜가 되는 지점은 어디일까? 진짜를 따라하려는, 누군가를 속여서 가짜가 진짜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수준을 넘어섰을 때도 그 가짜는 여전히 가짜인 걸까?

 

[1]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simulacra et simulation)’, 하태환 역, 민음사, 2001

TYPE: 전시
YEAR: 2017.7. – 2017.9.
STATUS: NOT COMPLETED
LOCATION: 대림미술관
CLIENT: 대림미술관
AREA: 150m2
DESIGN: 박천강
DESIGN TEAM: 이지연, 김소연

환상의 건축

건축의 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건축의 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건축의 영향력은 어떤 것인가?, 사회에, 인간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이 막연한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을 하기 전에, 먼저 이 시대 한 젊은 건축가의 이야기에 잠시 귀기울여보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건축이 제공할 수 있는 삶의 풍요로움과 행복을 믿는다. 또 한 이 즐거움을 전하는 전도사의 역할이 건축가의 몫이고, 건축의 힘이라 굳게 확신한다. 대중이 아직 그 즐거움을 몰라서 그렇지 (건축가가 느낀 만큼) 알게 되면 그들이 더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그걸 통해 나도 좋은 건축물을 더 지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거라고… 비록 지금은 힘겹게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런 작업들을 착실하고 겸손하게 하나둘씩 해나가면 그 노력들을 알아주는 시기가 오고(유명세 또는 자본으로 전환이 되고), 또 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에 기대 오늘도 나를 비롯한 수많은 건축가들이 밤을 지새운다.

 

이런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같이 하는 일이 있다. 스마트 폰에 이메일로 전송된 이 주의 건축이라는 웹진 뉴스레터를 보는 일이다. 작은 네모 창을 통해 어떤 건축과 건축계 이슈들이 새로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아마도 이런 강박적 반복은, 첨단 유행을 익혀야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나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건축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에서 기인한 걸 꺼다. 그러나 이 짓도 오랜 기간 반복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새로운 작업도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게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 때 느껴지는 감정은 불감증이다.

 

SANAA 50%, OMA 20%, 헤르족 앤 드뮈론 20%, 나만의 비법 10%, 혹은 자하 하디드 40%, 그렉 린 30%, 헤르난 디아즈 알론조 10%, UN Studio 10%, 남들이 모르는 소스 10%… 취향 역시 데이터베이스화 되고 참조적 전유는 공공연하다. 그 언어는 항상 모두가 인정하고 좋아할 수 있는 현대적인 것들 중 고른다… 컨텍스트의 고유함과 건축주의 개성, 그리고 대중을 위한 선량함의 코스프레까지 더한다면 금상첨화다…

 

끊임없이 돌고 도는 유행의 순환 뿐, 현재 우리가 처한 건축적 상황에 대한 담론도, 독한 솔직함도, 냉철한 분석도 없어 보인다. 반복되는 살아남기의 경쟁에 좌절하고 지쳐서인지, 대응을 할 힘도 의욕도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비단 한국에서 건축을 하는 나뿐만이 아니라, 현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전 세계 건축인의 공통적 특성으로까지 느껴지곤 한다. 이 모습은 자본주의가 끝없이 강요하는 ‘새로움’과 ‘독특함’에 부응하기 지친 세대의 적나라한 맨 얼굴이 아닐까? 왜 중요한지도 모르는 채, 새로움은 내 강박이 되었다. 또한 이 쳇바퀴처럼 영원 회귀하는 가상의 강박은 결국에는 나를 이 불감증의 감옥으로 인도했다.

 

꽤 최근까지 블록버스터 급 영화들의 후속편에서 반드시 등장하곤 했던 진부한 수사들인 ‘더 커진’, ‘더 화려해진’, ‘더 강력해진’ 등은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영화판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드래곤볼에서처럼 계속해서 어디선가 나오는 더 강한 상대는 슬라보예 지젝이 분석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1976)’에서처럼 더 이상의 잉여쾌락을 남기지 않는 욕망의 죽음만이 그 종착점이다. 그 끝은 무감각이고 더 나아가서는, 내 손에 쥐어진 고깃덩어리로서의 ‘남근’, 마주치기 싫은 적나라한 실재와의 대면일 것이다. 지금 그 무기력의 시대가 도래했다. 제길… 모두들 엿 같은 실재의 사막에 온 걸 환영한다.

tags: Writings

『건축의 힘은 무엇인가 』, 건축평단 vol 5. 2016 봄, 정예씨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