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s
Park Cheonkang Architects

광주 도서관: the Vault

 

 

Sangmu Incinerator was built in 2001 to incinerate the waste from the city of Gwanju. This relatively short-lived facility will now be transformed into a cultural venue due to the consistant request from the citizens.

 

The site emcompassing the insinerator is surrounded by evergreens that got planted twenty years ago to disguise the facility, and now they have grown into a mature and dense forest. We suggest to maintain this forest and make use of it as a core element for the future development of the site. This forest which is comprised mainly of pines and firs will become an outdoor extension of the library where people can read and relax. With this beautiful forest as a mediator, we propose the new program for the Sangmu Incinerator to be an a library focused on archiving and storages. As having the incinerator and the newly built library-the Vault as an anchor, the entire campus will become a cultural venue of distinct characteristics of knowledge exchange and a forum for debates; a “Library Campus”.

 

Generally, a library is one of the least commercial and most public civic program of our time. It’s open to everyone, and all the participants can find their own subject of interest in a free manner. Our library design tries to maximize the visitor experience that one can always find a preferrable spatial condition that suits one’s preference, personality or mood.

 

The library focused on creating various reading atmospheres from the most private to the most communal; Different ceiling heights, and number of groups, openness are created either inside or outside the building. The main reading room is the biggest space within the building, and its enormous barrel vault the space will enhance the feeling of “together-ness” to Gwangju citizens.

 

The materials of the building is carefully selected in accordance with the intimate relationship between the forest and the library. The main interior material is wood which will provide a cozy and comfortable feeling while reading and will connect to the warm shades of the evergreen forest. The exterior will be made of black semi-circular tiles to give the library a stable and calm mood, while at the continuous loggia at the ground level, an open promanade for strolling and resting, will be made of wood as well to resonate with the softness inside.

 

The new library building will become a solid anchor to the community not only socially but also manifested spatially, and to become a forum of knowledge of the cultural city of Gwangju.

 

TYPE: 도서관 (신축 / 공모전)
YEAR: 2020
STATUS: NOT COMPLETED
LOCATION: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1163
CLIENT: 광주광역시
DESIGN: HAPSA | 권경민 - 박천강

그 성엔 하늘에서 내려오는 숲이 있었어…

‘자연 속의 미술관’이란 타이틀은 언제나 멋지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런 ‘자연 속 미술관’이 되고자 한다. 서울과 멀지 않은 거리지만, 꽤 깊은 숲 속이라는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 주변 세팅은 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미 충분히 훌륭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성(古城)[1]과도 같은 건물의 실내에 들어가는 순간, 외부의 풍요로운 자연은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램프코어에 난 작은 창들을 통해, 또 각 전시실로 통하는 브릿지에서, 그리고 중정 전시실에서 저 멀리 ‘배경으로서의 자연’은 펼쳐지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주된 풍경은 어디를 가든 발가벗은 모습을 한 옥상의 회색 방수 코팅면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역전시켜 볼까?

 

이 건물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공간은 실린더 형태의 램프코어 공간이다. 이곳은 건물 전체에서 유일하게 수직으로 상승하는 공간이다. 이 램프코어 공간을 식재들로 가득 차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다다익선’[2]의 음각형태로 외부공간을 만들어보자. 다시 한번 사람들이 판테온과도 같이 원형공간 바닥의 가운데 영역을 점유하여 이 공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끔 하자. 그러나, 건축내부에 포획되어 아기자기하게 꾸며지고 길들여진 ‘중정으로써의 자연’이 아닌 우리의 기대와 안정성을 빗겨가는 자연을 만들자. 우리가 압도감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의 숭고함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자연. 우리가 당연한 듯 간단히 재단해버리는 ‘자연스러운 자연’을 넘어선 ‘판타지로서의 자연’. 철저하게 우리의 자연을 바라보는 내적 욕망을 극단까지 상상해보는 ‘잡종 자연’.

 

떠 흘러가는 거대한 야생의 숲이… 이곳에 정박한다. 이 건축에 포획되지 않으려는 ‘자연 덩어리’는 엄밀히 말해 세계수(世界樹)도, 라퓨타도 아니다. 그 둘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 램프코어의 공간은 내부의 수직적 경험을 더욱 충만하게 하기 위해 4m를 높인다. 그리고, 상부의 프레임에서 철재 기둥들이 솟아올라 식재를 담는 (망사와 이끼로 유지되는) 흙을 지지한다. 이 흙 토대는 가운데가 빈 도넛의 형태로 만들어 비, 눈, 빛을 램프공간 바닥면까지 내려오게 한다. 그 위로는 한국의 토종 식물인 소사나무, 느티나무와 각종 관목류를 심고, 흙 아래로는 석송류(club moss), 덩굴장미, 다육식물(succulent plant), 송악류(ivy)를 늘어뜨린다. 이 식물들은 마치 세 겹의 커튼처럼 램프 내부의 텅 빈 공간을 감싼다. 램프는 기존의 콘크리트에서 유리블록으로 교체하고 블록 내부에는 전구색 조명이 들어가 통로를 밝히는 빛이자 식재를 둘러싼 반딧불이 된다.

 

[1] 물론 고성이라는 개념은 소위 ‘자연’과 묘한 방식으로 조우한다.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고립된 문명’, 혹은 ‘자기-보호장치로서의 건축’이라는 개념-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고성’은 자연(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과 인공-건축(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이 각자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며 병치되고, 주변의 자연과 비교해 건축물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에, 어색하지 않게 자연과 어우러지고 있다는 본능적-무의식적 느낌을 준다.

 

[2] 다들 알다시피, 이곳은 현재 고 백남준 선생님의 ‘다다익선’이라는 작품이 공간을 압도하고 있다. 램프를 따라 올라가면서 바라볼 수 있는 계속해서 변하는 이미지로서의 기념비이자 숭고한 탑이다. 공간에 딱 들어맞는 절묘함으로 인해, ‘다다익선’은 지난 24년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아이콘으로써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이 건물의 건축가인 김태수 선생님의 초기 설계 의도와도 같이, 이 공간을 다시 아래로부터 꽉 차 올라간 공간이 아닌 비워낸 공간으로 되돌리고자 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탑의 공간이 아닌 생명으로 가득 찬 공간.

TYPE: 이미지 / 디지털 프린트
YEAR: 2016
STATUS: COMPLETED
LOCATION: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상상의 항해’ 전
CLIENT: 국립현대미술관
DESIGN: 박천강, 구보배 (조경)

환상의 건축

건축의 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건축의 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건축의 영향력은 어떤 것인가?, 사회에, 인간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이 막연한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을 하기 전에, 먼저 이 시대 한 젊은 건축가의 이야기에 잠시 귀기울여보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건축이 제공할 수 있는 삶의 풍요로움과 행복을 믿는다. 또 한 이 즐거움을 전하는 전도사의 역할이 건축가의 몫이고, 건축의 힘이라 굳게 확신한다. 대중이 아직 그 즐거움을 몰라서 그렇지 (건축가가 느낀 만큼) 알게 되면 그들이 더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그걸 통해 나도 좋은 건축물을 더 지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거라고… 비록 지금은 힘겹게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런 작업들을 착실하고 겸손하게 하나둘씩 해나가면 그 노력들을 알아주는 시기가 오고(유명세 또는 자본으로 전환이 되고), 또 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에 기대 오늘도 나를 비롯한 수많은 건축가들이 밤을 지새운다.

 

이런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같이 하는 일이 있다. 스마트 폰에 이메일로 전송된 이 주의 건축이라는 웹진 뉴스레터를 보는 일이다. 작은 네모 창을 통해 어떤 건축과 건축계 이슈들이 새로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아마도 이런 강박적 반복은, 첨단 유행을 익혀야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나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건축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에서 기인한 걸 꺼다. 그러나 이 짓도 오랜 기간 반복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새로운 작업도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게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 때 느껴지는 감정은 불감증이다.

 

SANAA 50%, OMA 20%, 헤르족 앤 드뮈론 20%, 나만의 비법 10%, 혹은 자하 하디드 40%, 그렉 린 30%, 헤르난 디아즈 알론조 10%, UN Studio 10%, 남들이 모르는 소스 10%… 취향 역시 데이터베이스화 되고 참조적 전유는 공공연하다. 그 언어는 항상 모두가 인정하고 좋아할 수 있는 현대적인 것들 중 고른다… 컨텍스트의 고유함과 건축주의 개성, 그리고 대중을 위한 선량함의 코스프레까지 더한다면 금상첨화다…

 

끊임없이 돌고 도는 유행의 순환 뿐, 현재 우리가 처한 건축적 상황에 대한 담론도, 독한 솔직함도, 냉철한 분석도 없어 보인다. 반복되는 살아남기의 경쟁에 좌절하고 지쳐서인지, 대응을 할 힘도 의욕도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비단 한국에서 건축을 하는 나뿐만이 아니라, 현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전 세계 건축인의 공통적 특성으로까지 느껴지곤 한다. 이 모습은 자본주의가 끝없이 강요하는 ‘새로움’과 ‘독특함’에 부응하기 지친 세대의 적나라한 맨 얼굴이 아닐까? 왜 중요한지도 모르는 채, 새로움은 내 강박이 되었다. 또한 이 쳇바퀴처럼 영원 회귀하는 가상의 강박은 결국에는 나를 이 불감증의 감옥으로 인도했다.

 

꽤 최근까지 블록버스터 급 영화들의 후속편에서 반드시 등장하곤 했던 진부한 수사들인 ‘더 커진’, ‘더 화려해진’, ‘더 강력해진’ 등은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영화판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드래곤볼에서처럼 계속해서 어디선가 나오는 더 강한 상대는 슬라보예 지젝이 분석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1976)’에서처럼 더 이상의 잉여쾌락을 남기지 않는 욕망의 죽음만이 그 종착점이다. 그 끝은 무감각이고 더 나아가서는, 내 손에 쥐어진 고깃덩어리로서의 ‘남근’, 마주치기 싫은 적나라한 실재와의 대면일 것이다. 지금 그 무기력의 시대가 도래했다. 제길… 모두들 엿 같은 실재의 사막에 온 걸 환영한다.

tags: Writings

『건축의 힘은 무엇인가 』, 건축평단 vol 5. 2016 봄, 정예씨출판